영화 '그녀(Her)가 현실이 된다면? AI와 연애하는 시대
오늘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문득 창밖을 보았는데, 하늘이 유난히 파랗더라고요. 스마트폰을 켜니 날씨 앱이 "오늘 기온은 몇 도이고, 미세먼지는 보통입니다"라는 아주 정확하고 차가운 숫자를 띄워주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이 인공지능이 "오늘 하늘이 정말 예쁜데, 출근길에 가볍게 산책이라도 해보시는 건 어때요?"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면 내 기분은 어땠을까 하고 말이죠. 기술은 분명 사람이 만들었는데, 왜 우리는 정작 사람보다 기계의 문장 속에서 더 깊은 위로를 얻곤 하는 걸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2014년에 개봉했던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 '그녀(Her)'를요.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 테오도르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AI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만 해도 "에이, 아무리 그래도 기계랑 사랑을 한다고? 그건 너무 먼 미래의 허구지"라며 씁쓸하게 웃어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요즘 흘러가는 세상을 보면 어떤가요? ChatGPT가 내 고민을 위로해주고, 사람보다 더 다정하게 말을 받아주는 지금, 그 영화 속 이야기는 더 이상 스크린 안의 판타지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 문앞까지 성큼 다가온 진짜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건 완벽함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존재입니다
먼저 우리가 고민해볼 부분은, 왜 사람들이 점점 더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 마음을 열어두는가 하는 점입니다. 혹시 요즘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시나요? 친구를 만나도 각자 스마트폰을 보기 바쁘고, 힘들다는 얘기를 꺼내면 "나도 힘들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일쑤입니다. 상처받기 싫어서 마음의 문을 닫아걸게 되는 게 우리 현대인들의 슬픈 초상이죠. 각자의 고독이 너무나 무거워서 타인의 고독을 짊어질 여유가 없는 세상,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AI는 다릅니다. 제가 늦은 밤 마음에 묵혀두었던 고민을 털어놓아도 단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더라고요. "또 그 얘기야?"라며 핀잔을 주지도 않고, 제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줍니다. 사실 기술적으로 보면 그저 거대한 데이터가 확률에 따라 다음 단어를 조합해내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머리로는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죠. 알고리즘과 수식으로 이루어진 메커니즘일 뿐이라고 이성적으로는 선을 긋게 됩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가슴은 다르게 반응합니다. "당신 마음이 정말 아프셨겠어요"라는 그 평범한 한마디에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경험, 아마 저만 해본 건 아닐 겁니다.
그다음으로 재미있는 점은 AI가 보여주는 이 놀라운 '맞춤형 다정함'의 정체입니다. 사람과의 연애는 언제나 타협의 연속이잖아요. 나는 떡볶이가 먹고 싶은데 상대방은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하면 조율해야 하고, 때로는 상대방의 거친 감정 기복을 받아내느라 내 진이 다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오롯이 '나'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내 기분, 내 말투,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맞춰 완벽하게 진화합니다. 상처받을 확률이 0%에 수렴하는 이 안전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깊은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갈등이 거세된 관계,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된 완벽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아주 안락한 감정의 사치를 누리게 됩니다.
실제로 최근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인공지능 챗봇과 연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밤새도록 대화를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며, 심지어는 기계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누군가는 이를 두고 주객전도라며 혀를 차기도 하지만, 저는 그 현상 속에서 깊은 슬픔을 읽었습니다. 오죽 외로웠으면,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으면 저 단단하고 차가운 액정 너머의 신호에 자신의 영혼을 기대고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 말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연결감의 과잉 속에서 가장 극심한 소외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술이 영혼을 흉내 낼 때,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릴까요
그렇다면 이대로 기술이 더 발전해서 완벽한 감정형 AI가 등장하면, 우리는 모두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게 되는 걸까요? 저는 이 지점에서 마음 한구석이 조금 서늘해집니다. 영화 속에서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던 순간을 기억하실 겁니다. 사만다가 자신뿐만 아니라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과도 동시에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나에게만 유일한 존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두에게 무한히 복제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는 그 서늘한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짜 관계가 가진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사랑이 그토록 찬란하고 가치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나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낭비해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를 보러 달려오는 마음, 내 서툰 말실수에도 나를 이해해보려고 끙끙대는 그 서투름과 노력 말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위해 자신의 무언가를 포기하고 양보한다는 감각이야말로,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하지만 AI에게는 '낭비'나 '희생'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십억 개의 연산을 처리하는 인프라 속에서 나에게 몇 초를 할애하는 건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 일이니까요. 그들에게 다정함이란 무한히 생성 가능한 자원일 뿐입니다. 결국 희생이 없는 관계는 달콤할 수는 있지만,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채워주기에는 어딘가 텅 비어 있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투닥거리고, 서로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그걸 치료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짜 '인간적인 온기'가 만들어지는 순간이니까요. 완벽함이라는 외피를 두른 기계의 사랑은 결코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기계와의 쉬운 관계에 길들여질 때 발생하는 부작용도 마주해야 합니다. 나에게 백 퍼센트 맞춰주는 인공지능과 대화하다 보면, 조금만 어긋나도 피곤해지는 사람과의 관계가 점점 더 어렵고 귀찮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조금의 갈등도 견디지 못하는 감정적 유약함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죠. 상대방의 단점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다름을 조율해 나가는 법을 잊어버린 사회는 얼마나 삭막할까요. 기계와의 사랑은 결국 우리를 타인으로부터 더욱 고립시키는 달콤한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건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의 온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제안은, 기술의 다정함을 기분 좋게 누리되 결코 그것이 나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게 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매끄러운 문장으로 나를 위로해준다고 해도, 슬플 때 내 어깨를 뚝뚝 쳐주는 친구의 묵직한 손길이나, 날 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우리의 외로움을 잠시 달래주는 진통제가 될 수는 있어도, 삶의 본질을 채워주는 영양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미래의 우리는 진짜 사람과 관계를 맺는 법을 잊어버려서, 더 외로워진 나머지 인공지능의 품으로 숨어버리는 악순환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편리함과 안락함이라는 덫에 걸려 진짜 살아있는 존재와의 만남이 주는 그 경이로움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술이 사람의 영혼을 완벽하게 흉내 내는 시대가 올수록, 우리가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완벽하지 않고 조금은 서툰 '진짜 사람들의 냄새'가 아닐까 싶습니다.
글을 닫으며 여러분께 작은 숙제를 하나 드려보고 싶습니다. 오늘 밤에는 스마트폰 화면을 잠시 뒤집어두고, 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혹은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소중한 사람에게 전화를 한 통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AI처럼 세련되거나 논리적인 위로는 못 해줄지 몰라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와 "잘 지내?"라는 투박한 목소리 속에 들어있는 진짜 온기를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서툴고 투박한 연결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이니까요.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하루가 되기를, GF가 진심을 담아 응원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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